<호주워홀/시드니>호주에서 집구하기(즉흥적)(성공적)

2017. 2. 5. 02:16여행 그 흔적/호주워킹홀리데이2016


2015년 12월 10일

시드니에 온 지 7일 쯤 지났을까. 

우리나라에 몇 배 쯤 되는 강렬한 태양이 창문을 너머 이불을 덥친다. 아무리 햇살이 좋은 나지만 얼굴이 뜨끈뜨끈해져서 깨는 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직 일곱시야? 호주의 아침은 참 빨리 강렬하게 시작된다. 



<강렬한 호주의 아침>



아참, 당장 오늘 저녁 묵을 방을 예약해야지. 오늘 밤 노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충 옷을 걸친 뒤 리셉션으로 내려갔다. 나의 피같은 30불이 이렇게도 쉽게 날아가는구나. 하룻밤에 한화 2만 7천원이라니. 그것도 8명이서 자는 방이! 아무리 물가가 비싼 나라라는 것을 알고 왔지만 가지고 온 돈이라곤 고작 750불이니 10불 20불에 울고 웃는 사정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한 3주 버틸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이후엔 어떻게 해야하지?'

지갑 속 액수와 내 머릿속에 있던 상상이 뒤섞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호주에서 집을 구하려면 최소 2주치의 보증금과 1주치의 렌트비를 한꺼번에 내지 않으면 집을 구할 수가 없다. 총 40만원 정도를 한꺼번에 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 낯선 땅에 대고 소리쳐봐야 내 사정을 봐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나에겐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집을 구해야만 해!



이렇게 조급해 질 줄 알면서도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올 땐 많은 돈을 가져오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기로 던져 놓는 일종의 '습관'이다. 오늘 주머니에 5천원이 있다고 가정하면, 난 3천원의 커피와 2천원의 머핀을 먹으며 눈 앞의 풍경을 즐겨야 오늘 필요한 만큼의 행복이 채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돈을 가지고 가면 많은 날들을 관광만하며 보내다 내가 원했던 워킹홀리데이를 해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만 사는 나의 모습>


사실 나는 오래 전에 군마현과 오사카에서 1년의 워킹홀리데이를 이미 마쳤다. 워낙 여유를 즐기는 성격탓에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받는 것에도 행복해서 일을 추가로 구하지 않았다.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남자친구,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원하는 '현지 사람처럼 살기'는 만족시켰지만 마음 한 구석에 '마지막에 일본 전국여행으로 마무리를 했으면 더 좋았을걸'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서 이번엔 여유와 긴장의 완급을 잘 조절하여 큰 돈을 모아 마지막엔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게 내 목표이다.


숨 한 번 고르고 오늘만큼은 느긋한 내 모습대신 빠릿한 내 모습을 풀가동 시켰다. 이 비싼 백패커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빠른시일내에 집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호주나라라는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 저렴한 집 세 군데를 찾았다. 그 전에도 몇군데 연락해 봤는데 방이 꽉찼다는 답장이 오거나, 아니면 답장을 무시당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집을 관리하는 마스터나 매니져라고 하는 사람들은 한 집만 관리하지 않고 여러집을 관리하기도 해서 꽤나 바쁜 모양이었다. 드디어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집 내부 사진이 올라와있지 않아 불안했지만, 백팩에서 가깝고 렌트도 싸서 내가 가진돈으로 당분간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네, 방있어요. 언제쯤 시간되세요?"

"지금 당장 보러가도 되나요? 저 지금 시간 많은데"

"음.. 제가 2시쯤 일을 가야해서요. 최대한 빨리와 주실 수 있나요?"

"네! 5분 뒤 도착 예정입니다"

"네 오시면 전화주세요" 


그 곳에 도착하자 내가 첫 날 초밥을 먹은 가게 바로 앞이었다. 흠! 익숙하니 좋은 곳이군. 호주의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들어오기전에 보안키를 접촉시키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하우스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밑에 도착했다고 하자 내려와 주었다. 두근두근.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 도착했다. 두근두근. 문 안이 열리면 바로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집은 신발장만 봐도 그 집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 듯. 내겐 그런 것들을 보는 눈이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신발들. 깨끗하다고 할 순 없었다. 구석에 코를 박고 주인 없는 코스프레를 하는 신발들도 있고, 어떤 신발은 또 가지런하게 여긴 내 구역이야! 라고 하는 신발들도 있다. 현관문과 바로 이어진 곳은 거실. 바로 맞은 편이 발코니가 한 눈에 들어오는 큰 창이다. 호주의 강렬한 햇살도 따라 들어와 베이지색 카펫위에 온 몸을 펼치고 누워 있었다. 주방, 주방은 꼬질꼬질했지만 냉장고도 두개, 그릇은 잘 씻어져 건조대에 놓여있었다. 


"아, 여기는 남자들이 쓰는 화장실이구요. 여자방은 화장실이 방 안에 따로 있으니 거길 쓰시면 되요.

냉장고도 이거는 여자들꺼, 큰거는 남자들꺼. 방 보여드릴게요"


침대에는 가방과 옷가지들이 커튼을 대신했고, 책상위는 여자들의 공간답게 책대신 화장품들이 차곡차곡 놓여있다. 깔끔하진 않지만 깨끗한 방이었다. 역시 넓은 창이 있었다.


"여기로 할게요. 돈 어디로 붙여드리면되죠?"


같이 와준 동생이 옆에서 너무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게 큰 조건은 필요하지 않았다. 커다란 창과 아침에 이불과 뒤섞여 줄 충분한 햇빛, 오히려 이곳저곳 널려있는 옷들과 꼬질한 신발들이 마음이 편했다. 털털하고 마음좋은 사람들이 살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어려보이지만 꼼꼼히 설명해준 매니져도 마음에 들었구.


나도 이제 호주에 집이 있다!!!

오늘부터 1일이다. 

 



"지금보니 꼬질했던 그 집.

그 땐 내게 너무나도 완벽했다. 햇살이 가득한 그 집."






*백패커스(Backpackers)는 배낭(Backpack)+여행자(-ers)이라는 의미로 배낭여행자들이 묵는 숙소를 말하기도 한다. 주로 저렴한 가격에 한 방에 여러명이 묵고, 대부분이 여행자이기 때문에 정보교환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커버레터(Cover letter) 호주에서 일을 구할 때는 이력서만 달랑 제출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자기소개서처럼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글을 첨부한다. 자신이 어떠한 경험을 했고, 근무 시 강점이 될 만한 것이 어떤 것인지 쓰면된다. 참고로 호주는 이력서에 증명사진을 첨부하지 않는다.